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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킹의 이동과 기후 패턴 변화 1. 북대서양의 기온 변화와 바이킹의 부상 – 기후가 만든 항해의 시대8세기 후반부터 11세기 초반까지, 북유럽을 중심으로 한 바이킹의 대규모 이동과 해상 팽창은 단순한 전쟁과 약탈의 결과가 아니었다. 그 이면에는 기후의 변화, 특히 북대서양 온난기라는 자연환경의 변동이 자리하고 있었다. 이 시기 북유럽의 평균 기온은 오늘날보다 약 1°C 정도 높았으며, 이는 단순히 온도가 올라간 수준을 넘어 생태계와 농업, 해양 환경 전반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온난해진 기후는 북유럽의 빙하 후퇴와 함께 경작 가능한 토지를 확대시켰다. 스칸디나비아 반도의 짧던 농업 가능 기간이 늘어나고, 보리와 귀리, 밀 등의 재배가 활발해졌다. 농업 생산량의 증가와 인구 성장, 그리고 풍부한 자원이 결합하면서 북유럽 사회는 경제적 기.. 2025. 10. 15.
그리스·로마 문명과 기후 스트레스 1. 지중해의 날씨와 문명 – 기후가 경제와 사회를 좌우하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 문명은 모두 지중해성 기후라는 특정한 환경 조건 속에서 성장했다. 지중해성 기후는 겨울에는 온화하고 강수량이 집중되며, 여름에는 건조하고 폭염이 지속되는 특징이 있다. 이러한 기후는 올리브, 포도, 밀과 같은 주요 농산물 재배에 유리했지만, 반대로 가뭄이나 폭염과 같은 이상 기후가 발생하면 곧바로 식량 위기로 이어지는 구조였다.고대 문헌과 고고학적 자료를 통해 확인할 수 있는 것은, 그리스 도시국가와 로마 제국은 주기적인 기후 스트레스에 매우 민감했다는 점이다. 예컨대 고대 아테네와 코린트 지역은 1세기 단위로 반복되는 강수 부족과 폭염 기록이 남아 있으며, 이는 곡물 수확량 감소로 연결되었다. 로마 제국 역시 포에니 전쟁 .. 2025. 10. 13.
아낙코테·사하라 사막화와 인간 이동 1. 사하라가 초원이던 시절 – 기후의 변화와 문명의 시작지금의 사하라 사막은 세계에서 가장 광활한 건조 지대 중 하나로, 끝없는 모래언덕과 척박한 생태계를 상징한다. 그러나 약 1만 년 전만 해도 이 지역은 지금과는 전혀 다른 풍경을 품고 있었다. 당시 북아프리카는 ‘녹색 사하라’라 불릴 정도로 푸르고 생명력 넘치는 초원 지대였다. 사바나 기후가 형성되어 코끼리, 기린, 하마, 악어 등이 살았고, 호수와 강이 거미줄처럼 뻗어 있었다. 고고학자들이 발견한 동굴 벽화에는 인간이 물소를 사냥하고, 고기를 나누며, 호수 주변에서 물고기를 잡는 장면이 생생히 묘사되어 있다.이 시기의 번영은 기후 주기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었다. 약 10,000년 전, 지구의 자전축 기울기 변화로 인해 북반구 여름의 일사량이 증.. 2025. 10. 11.
중국 명·청대 대기근과 황하 범람 1. 소빙하기의 그늘 – 명대 후반 중국을 뒤흔든 기후 냉각과 대기근의 시작 16세기 후반에서 17세기 초반, 유럽이 르네상스를 지나던 시기 중국은 명 왕조의 황혼기를 맞이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 시기 중국을 강타한 가장 거대한 변화는 정치나 사상보다 기후의 급격한 냉각, 즉 ‘소빙하기’였다. 이 기후 변화는 단순한 온도 하락에 그치지 않고, 중국 농업과 사회 구조, 그리고 왕조의 생존 자체를 뒤흔드는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했다.명대 중기 이후, 특히 1580년대부터 기온이 지속적으로 하락하면서 농업 생산 기반이 약화되었다. 중국 북부, 특히 황하 유역과 산시, 허난 지역에서는 서리가 빨리 내리고 봄이 늦게 오는 현상이 잦아지며, 수확기가 단축되었다. 주로 밀과 조를 재배하던 북방 농민들은 흉작에 직면했다.. 2025. 10. 8.
르네상스 유럽과 기후의 역할 1. ‘소빙하기’의 도래 – 르네상스 유럽을 덮친 냉각의 시작 14세기부터 19세기 중반까지 유럽을 비롯한 북반구는 약 500년 동안 지속된 기후 냉각기, 즉 ‘소빙하기'를 경험했다. 이 시기는 단순히 기온이 일시적으로 떨어진 현상이 아니라, 유럽의 농업, 경제, 사회 구조, 나아가 문화와 예술의 방향까지 바꾸어놓은 복합적인 변동기였다. 특히 15~16세기 르네상스의 중심지였던 이탈리아와 북유럽에서도 이 냉각의 영향은 예외가 아니었다.기상학적 분석에 따르면 소빙하기는 대략 14세기 초부터 서서히 시작되어 17세기에 정점을 찍었다. 평균 기온은 오늘날보다 약 1~2도 낮았으며, 이는 농업 생산성의 급감과 빈번한 흉작을 초래했다. 알프스 지역에서는 만년설이 하강해 농경지를 덮었고, 북해와 발트해에서는 해빙이.. 2025. 10. 8.
고려·조선 시대 가뭄 기록과 사회 반응 1. 하늘이 닫힌 해 – 고려와 조선의 가뭄 기록 속 자연의 경고 고려와 조선은 농업 중심의 사회였다. 따라서 비의 유무, 기후의 불균형은 곧 국가의 존립과 직결되는 문제였다. 특히 가뭄은 단순한 기상 이변이 아니라, 백성의 생존, 왕조의 정당성, 사회의 도덕적 질서를 시험하는 사건으로 여겨졌다.《고려사》와 《조선왕조실록》에는 수많은 가뭄 기록이 남아 있는데, 이들은 단순한 날씨 보고서가 아니라, 당시 사회가 자연과 어떻게 관계 맺었는지를 보여주는 일종의 "기후 연대기"다.고려 시대의 가뭄은 대체로 정치적 불안과 함께 나타났다. 예컨대 고려 현종 11년(1020)에는 전국적인 가뭄이 발생하여 강물이 말랐고, 백성들은 굶주림에 시달렸다. 《고려사》에는 “봄부터 여름까지 비가 내리지 않아 백성들이 산야의 풀.. 2025. 10. 8.